잡식성 책 읽기/Econ

한국 경제사의 재해석 (김두얼)

choijeo86 2023. 1. 31. 00:35

한국 경제사의 재해석(김두얼) Link

 

다른 연구소에 있는 선배와 밥을 먹으면서, 경제사 연구자이신 김두얼 교수님 팟캐스트(Link)를 재밌게 듣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두얼 교수님이 누구신지는 당연히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팟캐스트를 하고 계신줄은 몰랐는데 말씀도 재밌게 하시고 내용도 인상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흥미가 들었다. 그리고 유튜브로 그런 고급진 팟캐스트를  듣는 선배님 리스펙트 

 

주말에 어떤 책을 읽을까 책장에 꽂힌 많은 책들을 훑다 그래서 '한국경제사의 재해석(김두얼)'을 뽑아 절반 정도 읽었다. 표지를 넘기기 전까지는 말 그대로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경제사에 대한 통사일 것으로 짐작하고 뽑았건만, 정확히는 일제강점기 및 해방 이후 한국 경제의 발전을 다룬 저자의 독립적인 논문 8편을 재구성한 것이었다. 몇몇 연구들(예컨대 식민지 시기 행려병자의 신체 기록을 활용한 연구)은 이미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것 들이었다.  

 

책의 앞부분에 실린 네 논문을 읽으면서, 저자는 어려운 모형, 수식 없이도 자신이 보이고자 하는 바를 매우 명료하고 깔끔하게 보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네 논문 모두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특히 '식민지 조선의 회사 수'를 연구한 논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1. 연구주제가 왜 중요한지를 제시하고('회사라는 제도의 도입이 경제성장에 왜 중요한가') 2. 기존의 연구가 가진 문제점들을 지적하고('그런데 식민지 조선의 회사 수를 추계하는데 일관성이 없다'), 3. 왜 그런 문제가 생긴지 파악한 후 ('기존 연구들에서 회사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 4.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그래서 회사란 무엇인가?') 5. 마지막으로 기존 연구들의 한계를 극복한 ('그럼 식민지 조선의 회사 수는 정말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연구이기 때문이다.

 

책에 있는 논문의 결론들에 대해서는 독자에 따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내가 생각할 때 이 책은 좋은 사회과학 연구란 무엇인지 보여주는데 있어 모범 사례이다. 복잡한 수식, 모형 하나도 없지만 그런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논문을 통해 전달하는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그보다 좋은 연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할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동기부여와 더불어 약간의 자괴감도ㅠ

 

PS1. 계간 서평전문지인 '서울리뷰오브북스'(Link)를 구독하면 김두얼 교수님의 서평을 거의 매 권 볼 수 있다. 잡지가 배달되어 오면 김두얼 교수님 서평부터 보는 편인데, 비평이 아주 날카롭다는 (+그래서 저자 입장에서는 다소 박하게 느껴지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PS2. (조선 말 이후) 한국경제사 내지 한국경제의 발전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더 참고할 수 있는 책들은 다음과 같다.

내가 아는 책들이 나온지 몇 년 지난 것들이 대부분이라, 최근 몇년 동안 나온 내가 알지 못하는 책들이 더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경제사1,2 (이영훈) Link

기아와 기적의 기원 (차명수) Link

기적에서 성숙으로 (아이켄그린, 신관호, 퍼킨스) Link

한국경제 (아이켄그린, 임원혁, 박영철, 퍼킨스) Link

외환위기와 한국경제 (이제민) Link

한국의 경제위기와 극복 (김두얼 외) Link

한국의 무역 성장과 경제, 사회 변화 (박경로 외) Link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지주형) Link

한국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박승호) Link

 

PS3. 외환위기 이후 코로나까지. 한국 경제의 2000년대 초 변화를 연구한 기념비적인 저작은 누가 언제 쓰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