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장

20211107

choijeo86 2021. 11. 7. 09:17

1. 서울 출장을 갔다왔다. 토요일에는 오전 내내 자다가 오후에 겨우 일어나 탁구 치러 갔다. 출근 단 두 달 만에 직장인 다 됐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레슨 단 두 달만에 빠른 속도로 탁구 실력이 붙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반 년 정도 탁구만 더 치다가 다음에는 테니스로 옮겨봐야겠다. 

 

2. 혼자 조용히 끄적대는 블로그인데 가끔 방문자 수가 꽤 높게 나올 때가 있다. 어디 홍보한것도 아닌데 어디서 어떻게 알고 들어오는 분들인지, 어디 SNS에 좌표 찍혔나... 생각한다. 검색어 유입도 가끔 확인하는데 '미국 세탁기'가 있어서 혼자 빵 터졌다. 미국 세탁기 찾다가 제 블로그 누르신 분, 필요한 정보를 올린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방문객 중에 같은 연구소 사람들이 있을수도 있고, 동종 업계 사람들도 제법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선 넘지 않는 수준에서) 일하면서, 연구하면서, 생활하면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 고민들을 여기 몇 글자씩 적어보고 싶다. 내게도 정리가 되지만, 내가 모르는 어느 누군가에게도 느낌표가 될지 모른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그랬으니까.  

 

3. 올해도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참 여러 의미에서 스펙타클한 한해였다. 내 인생에서 올해 같은 때는 다시 오지 않을거다.

 

만 35세다. 유학을 나갈 때 추천서를 써주신 K 교수님께서, 한국의 연구소로 돌아올 경우 만약 대학 교수가 되고 싶다면 5년 안에 승부를 내야 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이제는 20년도 더 된 이야기이지만, 아버지께서 대학에 임용되신 것이 만 40세이셨다. 당시에는 조교수 임용에 명시적인 나이 제한이 있었다고 들었고, 아마 나이 제한에 걸리기 직전에 임용되셨을거다. 그리고 5년 뒤면 이제 내가 만 40세다.

 

4. 예나 지금이나 학교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크게 없다. 세종살이도 만족스럽고 연구소 만족도도 괜찮은데 굳이 옮기려 애써야 하나... 생각한다. 행복한 교수들보다 그렇지 못한 분들을 더 많이 봤던 내 경험도 한 몫 할거다. 그리고 정출연에 와보니 박사과정 때는 알지 못했던, 정출연에서 누릴 수 있는 장점들도 크게 느껴진다. 

인테리어도 겸해 책을 하나 가득 연구실에 가져다 놓았더니 내 방에 오신 다른 박사님이 '박사님은 여기 오래 뿌리 내리실 모양이네요'라고 하신다. '그러게요, 이사한다고 책 옮길 생각하니 아찔하네요ㅎㅎ'

 

5. 만약 '논문을 쓰는 이유 =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라면, 학교로 옮길 생각이 별로 없는 나는 굳이 SSCI급 저널에 논문을 실으려 애쓰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편이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은,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고 싶고, 연구자의 정체성은 논문을 쓰는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은, 논문 쓰는 것을 꾸준히 하고 싶다. 

 

그리고, 그냥 저널에 논문 좀 있으면 혼자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내가 이 주제에 대해서는 좀 안다고 인정받는 거니까.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저널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6.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스트레스, 특히 불안함에 매우 취약한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박사과정은 쥐약이었다. 코스웍이 끝나고 졸업할 때 까지 졸업과 구직에 대한 불안함에 시달리지 않은 때가 없었고, 스트레스를 잘 조절하지 못했다.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더라.)

누군가는 그런 스트레스를 오히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계기로 삼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직장이 생긴 이제는, 적어도 내가 시달렸던 종류의 그런 어려움들로부터는 많이 자유로워졌다. 그렇다면 이제 더 나은 생산성을 보일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7. 박사 논문 중 두 편을 SSCI 저널들에 투고했고, 하나는 공저자가 좀 덜 바빠지면 손봐서 투고하기로 했다.

경제학에서 내가 본 바로는 박사 논문 중 한편이라도 저널에 실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세 논문 중 하나라도 SSCI 저널에 실린다면 아마 나쁘지 않은 성과일 것이다. 아무튼 투고 했으니 앞으로 어떤 일들이 생기는지 경험하는 것도 재밌겠다. 과연 리젝 당해도 재밌을까

 

8. K형이 '협상력(Bargaining Power)은 결국 outside option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했다. 옳은 말이다. 

 

9. 많은 이들이 이 문제로 고민을 한다. 정답 없는 문제이고 각자의 선택은 하나의 길이 된다. 이에 대해 최근에 들은 글 하나를 링크해 둔다. Link

 

10. 뜬금없이, 논문을 읽다 박사과정 3년차 쯤에 도서관 앞에서 (같은 과 박사과정을 이미 마치셨던, 연차 차이가 제법 나는) K 선배님을 마주쳤을 때가 떠올랐다. 전공과 지도교수는 정했느냐, 필드 페이퍼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느냐 등을 물으시기에 무역을 전공하기로 했다고 하자 재밌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하자 그 분은 '끝까지 재밌어야 해요.' 하고는 가던 길을 가셨다. 

아직은 내 전공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흥미롭고 할만하다. 
그런데 과연 끝까지 재밌을 수 있을까. 그건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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