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성 책 읽기/Social Science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choijeo86 2023. 4. 21. 18:05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Link

 

1. 김승섭 교수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글은 역시 10년 전 쯤에 쓰셨던 대학원생들에게 전하는 10가지 조언(Link)이다.

석사과정을 시작하면서 오욱환 교수님의 글(Link)과 함께 그 글을 연구실 내 자리 책장에 붙여두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다시 돌아보니 지난 대학원 10년 동안 제대로 지킨 항목이 별로 없는 것 같다ㅠ 당시 연구자로 진로를 정한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던 글을 쓰신, 신진 보건 연구자이셨던 분은 이제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사회역학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셨다. 

 

2. 김승섭 교수님의 전작들까지 통틀어 그 분이 쓴 책들을 다 읽었는데, 앞의 책들도 좋았지만 나는 이 책이 특히 더 마음에 닿는 부분이 많았다. 아마 연구자로서 전작들을 쓰실 때 보다 더욱 연륜과 경험이 쌓이셨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또한 여러 사건들을 넘나드는 전작들에 비해 이 책은 천안함 침몰 사건, 그리고 생존자들의 정신 건강과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 책 전체를 꿰기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느쪽이든, 뚜렷한 문제의식 위에 놓인 좋은 사회과학 연구가 단순히 하나의 논문, 보고서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마음을 울리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되고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보여주고 있다. 다시 한 번, 정말 좋은 책이다.

 

3. 천안함 함장이었던 최원일 대령의 인터뷰(Link), 그리고 다른 생존자들의 인터뷰들을 종종 접했다. 이제는 군에서 전역하여 보다 운신의 폭이 넓어지셨을 최 대령님과 다른 천안함 생존자들이 자신들을 향한 몇몇 근거없는 의심, 비난과 모략에 더욱 힘껏 맞설 수 있기를 바란다. 국가를 지키는 의무를 다하다 10년 넘도록 부당하게 고통받고 있는 그들에게 응원과 연대를 보낸다.

 

4. 책을 통틀어 가장 마음에 다가온 부분은 이것이었다. 왜 우리 사회는 천안함과 세월호를 갈라치기 하여 상처를 더하는지.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이들을 보며, 나 또한 화가 나면서 많이 들었던 순진한 질문이었기 때문 같다.

 

(상략) 그 때마다 저에게는 '왜 우리는 천안함 사건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같이 애도하고 또 살아남은 자들을 함께 위로할 수 없는 것일까'라는, 누군가는 순진하다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포기하기에는 너무 절실한 질문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p.136)

 

세월호와 천안함을 적대적인 관계, 반대의 관계, 이렇게 몰고가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저는 본질은 같다고 생각해요. 해상 사고가 일어났고, 정부의 대처가 잘못됐기 때문에 그런 논란들이 많아 진거고. 왜 천안함과 세월호 비교하면서 적대시해야 하고, 유가족들을 서로서로 적대시하게 만드는지 (생존장병 E 인터뷰) (p.178)

 

(천안함 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여사는 2014년 세월호 사건 당시 팽목항으로 내려갔다고 했다. 직접 재배한 녹두로 죽을 쑤어 160인분을 도시락에 담아갔다. 이심전심이었다. '내 자식을 그렇게 보내고 보니 세월호 부모들 마음이 어떤지 너무 잘 이해가 됐다. 작은 위로라도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갔다". 그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배수강 기자가 쓴 신동아 2020년 6월호 기사에서 재인용. 책 p179.)

 

4. 김승섭 교수님 책의 마지막 두 문단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오늘도 무슨 데이터에서 처음 보는 수많은 기업 이름들을 만지작 거리며 여기서 뭘 어떻게 뽑아내야 어디 SSCI 저널에 논문 하나 실을 수 있을까, 행복회로나 돌리던 누군가는 또 부끄러워진다. 

 

 오늘날 대학에서 공부는 영어로 쓰여진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발표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어느 대학도 연구자가 한국 사회의 사건을 한국어로, 그것도 논문이 아닌 책으로 쓰는 일을 권하지 않습니다. 한국어로 된 책은 매년 여러 기관을 통해 발표되는 대학의 순위를 올리는데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평가를 통해 측정하는 대학의 경쟁력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또 그렇게 대학이 순위 경쟁에서 살아남는게 한국 사회에 좋은 일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부족함과 계속해서 대면해야 했습니다. 책과 논문을 찾아 읽고 동료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했지만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 과정을 반복하며 제가 연구자로서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그 중 가장 나은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자 안간힘을 썼습니다. 얼마만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충실히 해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부족한 책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이용하는 것을 넘어 더 나은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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