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장

20211221

choijeo86 2021. 12. 21. 23:19

1. 박사과정 중에 기업-노동자 연결 데이터를 이용한 연구들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지도교수가 스웨덴의 데이터로 연구들(예컨대 Link1 Link2)을 계속 하고 있기도 하고, 이런 종류의 데이터를 이용한 좋은 연구들이 무역 분야에서도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에 어떤 데이터들이 있는지 좀 찾아봤었다. 언젠가 지도교수를 찾아가서 이런 데이터도 있고 저런 데이터도 있더라 하니 몹시 진지한 얼굴로 'idea is important.'라고 한마디 하셨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내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는 없었고, 1시간 거리에 있는 데이터센터에 가면 독일 데이터가 있다는 얘기만 들었다.

 

2. 한국에도 기업-노동자 연결 데이터가 있으면 연구할 수 있는 주제들도 매우 많고, 정책 수립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아주아주 클텐데 아쉽게도 그런 데이터가 생기기는 할지 기약이 없다.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연구들이 나왔고 나오고 있는데. 당장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어도 언젠가 한국에서도 이런 데이터가 통계청을 통해 연구자들이 쓸 수 있게 되면 좋겠다. 

 

3. 연구를 하는데 있어 "아이디어를 먼저 내고 그에 적합한 데이터를 찾을 것인가, 반대로 데이터를 보고 여기서 아이디어를 찾을 것인가" 또한 중요한 질문이지만 정답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냥 내 개인적인 느낌과 경험으로는 정말 아주 좋은 논문들 중에는 전자 쪽이 많은 것 같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있고 그걸 보이기 위한 데이터를 만들거나 접근하는데 수년간 한땀한땀 공을 들이는... 반대로 어떤 데이터를 보고서 이 데이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를 찾는 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는데, 전자에 비해서는 좀 더 안전할 수 있지만 그만큼 '띵작'이 나올 가능성은 떨어지는 것 같다.

물론 정말 운이 좋아서 남들은 못보는 좋은  데이터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 또 얘기가 좀 다르겠다. 

 

4. 행운도 때로는 중요하다. 정확한 논문명은 기억이 안나는데 구조적 추정 쪽 문헌에서 매우 중요한 논문 하나가, 저자가 펍에서 맥주 마시다가 옆에 있던 아저씨와 같이 마시게 되었고, 연구 이야기를 했고, 연구에 이런 데이터가 필요한데... 했더니 그쪽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던 아저씨가 '그 데이터 내가 줄 수 있는데?' 라고 해서 쓰게 된 논문이었다고 한다. 박사 2년차 필드 수업 시간에 들은 이야기였는데 알고보니 제법 유명한 에피소드였다. 

 

5. 보고서를 하나 읽다가 어떤 데이터가 이용 가능해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데이터를 통해 다룰 수 있는 아이디어가 생겼고,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데이터를 몇 개 받아서 까보니, 아니나 다를까, 표준화가 안되어 있어 정리하는데 품이 많이 들게 생겼다. 그래도 데이터 자체가 쓰레기여서 아이디어를 버려야 하거나 그런건 아니지만, 남들이 안했던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연구하다보면 흔히 생기는 경우이지만, 아무튼 이건 좀 길게 보고 가져가야 할 것 같다. 그러다 으앙 나 안해!! 할 수도 있겠지.

 

6. 연구소의 다른 박사님과 밥 먹다가 그 분이 사용하신 선하증권(Bill of Lading) 데이터에 대해 들었는데 흥미로웠다. 역시 데이터 만지는 사람들은 어떤 새로운 데이터를 들으면 우선 '그 데이터에서는 파먹을게 없나?'부터 떠오르나 보다. 물론 막상 데이터를 보면 또 5번에서 받은 느낌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선하증권 데이터를 들으니 떠오르는 최근 국제무역 논문이 하나 있다. Link

앞서 소개글을 적었던 Flaaen Hortacsu Tintelnot의 AER에 실린 세탁기 세이프가드 논문Link과 Huang et al의 미중무역전쟁이 기업가치에 미친 영향에 대한 논문Link들도 모두 BoL 데이터를 이용하였다.

플러스 Aaron Flaaen과 Justin Pierce, 그리고 다른 여러 동료들이 BoL 데이터의 국제무역 연구에 대한 활용에 대해 최근에 논문을 하나 냈는데 유용할 것 같다. 그것도 자세히 읽어봐야겠다. Link)

 

7. 학교에만 있다가 연구소가 첫 직장이자 사회생활이다보니 학술 혹은 정책 연구 관련해서 새롭게 알게 되는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나는 박사까지 계속 학교에 있었지만,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가려는 이들에게는 관심있는 정출연에서 짧게 일해보고 나가는 것도 (약간의 행운만 더해진다면) 꽤 괜찮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8. 업무외로 내 시간을 한시간 정도 만들려면 출근 직후가 퇴근 직전보다 나은 것 같다. 한 3-4달 근무해보니 생산성은 출근 직후부터 점심먹기 직전까지가 (그나마) 높고, 점심 먹고는 졸려 오며 커피 한 잔 하거나 좀 졸다가 다시 일하면 퇴근 직전이 가장 생산성이 낮다. 

 

9. 저널에 낸 논문 중 하나가 딱 한달만에 리뷰어들에게 넘어갔다. 연말 넘어가고 새해에 리뷰들을 받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비싼 투고비 내고 데스크 리젝 당하는 경우는 피했다. 

 

10. 딱히 일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일찍 출근하고 있다. 박사과정 때 좀 이렇게 살지. 국책연구단지 근무환경이 다 비교적 괜찮은데 주차 여건이 좀 나빠서, 연구소 바로 옆 주차장에 차를 대려면 남들보다 먼저 올 필요가 있다. 어쨌든 개인 업무 공간이 있다는 점은 출근 스트레스를 많이 낮추는 것 같다.

 

11. '박사과정 때 조교수처럼 사는 애들은 조교수가 된다.'는 말을 박사과정 중에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상당 부분 실제로도 그렇다. 조교수처럼 살지 않았으니 조교수가 안된건 지극히 당연한데,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겠다. 

 

12. 학회 토론을 하나 맡았다. 두세시간 준비했다. '연말에 괜히 일거리 만들었네' 하고 속으로 약간 투덜댔다. 오늘 학회에서 사례비를 준다고 메일이 왔다. 다음에 또 할까.

 

13. 날이 춥고 바람이 차다. 며칠 전 세종에 올해들어 처음으로 하얗게 쌓일 만큼의 눈이 내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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