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성 책 읽기/Humanities

낭만주의의 뿌리 (이사야 벌린)

choijeo86 2022. 3. 8. 12:27

낭만주의의 뿌리 (이사야 벌린, 석기용 번역) Link

 

요새 퇴근하고서, 혹은 휴일에 시간날 때 강유원 선생의 강의를 듣거나, 대안연구공동체에서 진행하는 최순영 선생의 러셀 서양철학사 강독(Link)을 조금씩 들으며 책들을 몇 권 읽고 있다.

 

(강유원 선생이 15년 넘게 하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다양한 강독들은 수준도 높고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금까지 쌓인 분량만으로도 상당하다. 매일 하나씩 들어도 적어도 5년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세무사 분께서 강의들을 매우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 두셨다. Link

 

강유원 선생의 첫 강독 강의로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The Roots of Romanticism)'을 선택했다. 석기용 선생의 번역이 작년에 나왔기에 그 책을 원고 삼아 강의를 몇 개 들었....

 

....는데 번역이 아무리 봐도 좋게 봐주기 어렵다.

 

번역에 대한 보다 상세한 비평은 알라딘에 쓴 리뷰로 갈음한다. Link

 

결국 더 이상은 읽기 어렵다 싶어 리뷰에 쓴 대로 강유원-나현영 역(Link)을 중고 서점에서 새로 주문했다. 

알라딘의 책 정보란에 높은 평점을 준 한 줄 리뷰들이 많은데, 그들 중 책을 읽고 리뷰를 쓴 이들이 몇이나 되는지 좀 의심스럽다. 대부분 그냥 절판된 책 새로 나왔다고 별 5개 준 것이 아닌가 싶다. 

 

번역자는 직역과 의역 사이에서 어느 정도 선택을 해야 하고, 둘 사이에 정답이 없다는 것은 상식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라 하더라도 "인간은 자연 앞에 거울을 집어 들어야 한다", "후미진 영토", "불투명한 인물" 등의 그냥 우리 말로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힘든 표현들을 좋은 번역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대체 불투명한 부모는 어떤 부모인거야???)

이미 네 개의 예시면 충분할 것 같아 리뷰에 더 적지는 않았지만, 특히 2장에서, 그 밖에 매끄럽지 않거나 어색한 번역문은 제법 많았다.

 

('학자'와 '스콜라 철학자' 부분은 상당히 심각한 오역일 수 있는데,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명확히 지적하기 어렵지만, 그냥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스콜라 철학자'가 맞는 번역일 것 같다. 학자를 뜻했으면 그냥 scholars라고 쓰지 scholastics라고 하지 않았을 것 같아서.)

 

 

글에도 썼듯이 학술서적의 번역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출판시장의 척박한 환경에서 이러한 번역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환영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혹여 번역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나름 조심스럽게 글을 썼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문제가 있는 번역들을 독자가 지적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매우 문제다. 

 

번역에 대한 지적만 몇 글자 적고 말았는데, 아무튼 3월 한 달은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를 읽으려 한다. 책에 대한 감상은 다 읽고 이후에 더 적는 것으로. 

 

PS1. 강유원-나현영 역의 경우 강유원 선생이 정확하고 가독성 높은 번역에 매우 공을 들인다는 점, 그리고 나현영 선생이 영문과 출신의 번역가라는 점에서 석기용 역보다 가독성이 훨씬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근데 강유원-나현영 역은 2005년에 나온 것이었고 석기용 역은 그보다 16년 뒤에 나온 것인데....???)

 

PS2. 출판사에서는 석기용 번역이 절판된 이전 판본의 '오역'을 바로 잡았다고 하였다. 글쎄다. 

 

PS3. 강유원과 석기용 두 분은 책을 함께 번역(Link)한 적도 있다. 응....???

 

PS4. 학술 서적의 번역에 대한 지적들, 그리고 그에 대한 방어 내지는 논박들은 당연히 왕왕 벌어진다. 무례하거나 지나치게 공격적인 경우만 아니라면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번역하는 입장에서는 마음 다칠 수도 있겠지만....) 아주 오래 전에 본 이런 경우가, 존 키건의 '제2차세계대전사' 번역에 대한 것이었다. 번역에 대한 말들이 매우 많았는지 결국 역자인 류한수 선생이 DC 2차세계대전사 갤러리에 글을 올리기도 했었다 (Link) 투하전차는 좀 심하긴 했네. 그 책도 책장에 잘 꽂혀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