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성 책 읽기/Humanities

스페인 내전

choijeo86 2021. 10. 31. 16:00

2021.10.31

스페인 내전 (앤터니 비버 지음, 김원중 옮김) Link

 

11월에는 스페인내전, 그리고 중일전쟁에 관한 조금 더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김시덕 역 교감 해설 징비록도.

 

========================================================

 

서문

 

- 생텍쥐페리는 '내전은 전쟁이 아니라 병이다. 적이 내 안에 있고 사람들은 거의 자기 자신과 싸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1936년 시작된 스페인의 비극은 그 이상이었다. 

 

- 양 극단에 위치한 두 정치세력이 서로 상대편을 종말론적으로까지는 아니라도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이미지를 조작함으로써 자신들의 힘을 키웠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내포된 분역적 성격이 형제들을 정체불명의 타인으로 만들고, 노동조합원 혹은 상점주들을 계급의 적으로 돌려놓았으며, 평범한 인간의 본능을 짓밟고 유린했다. 

 

- 이 전쟁에서는 두 개의 갈등 축이 더 나타나는데, 하나는 국가의 중앙집권과 지역적 독립 간의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권위주의와 개인의 자유간의 갈등이다. 

 

- 스페인 내전은 그 역사가 승자보다는 패자에 의해 더 효과적으로 기술된 흔치 않은 현대 분쟁으로 꼽힌다.

 

- 스페인이 내전과 프랑코 시대로부터 빠져 나와 지금의 스페인이 된 것은 유럽 전체의 맥락에서 보더라도 가장 놀랍과 인상적인 변화로 꼽을 만 하다. 

 

- 투쟁의 강도가 점점 높아진 좌파는 치안대와 식민지 파견군의 잔학한 행위를 용서할 수 없었고, 우파는 우파대로 좌파가 또다시 폭력 혁명을 시도하기 전에 선수를 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믿음이 강했다.

 

-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이상은 공화 정부가 대외적으로 내세운 주장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나타난 혁명의 실제 모습, 코르테스(스페인 의회)의 무기력과 좌우 모두 법을 존중하지 않았던 태도 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 절멸의 수사가 자기 실현적 예언이 되는 경향이 없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Queipo de LIano 장군은 세비야의 라디오 방송에서 한 악명높은 연설에서 국민 진영 병사 1명이 죽을 때 마다 공화 진영 사람 10명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이 말은 후에 그다지 틀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 여러 역사가들이 주장하듯이, 내전의 승자는 공포와 증오의 악순환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게 된다. 

 

제1장: 스페인의 국왕들

 

- 이 한 장의 사진만큼 20세기 초 스페인의 극단적인 사회 경제적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진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점은 아마도 차를 밀고 있는 농민들과 운전대를 잡고 있는 왕이 자기 나라 안에서 서로를 틀림없이 외국인처럼 여겼을 것이라는 점이다.

 

- 전쟁 때문에 계급적 이해관계에 따른 적대감이 분출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두 가지 갈등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 하나는 권위주의적 지배와 자유주의적 본능 간의 갈등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앙집권적 정부와 지역주의적 열망 간의 갈등이었다.

 

- 교회는 일반 백성들을 지옥에 보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한편, 종교재판소를 두고 그 지옥을 미리 이 세상에서 맛보게 했기 때문에 교회권력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다. ... 성직자들은 용서와 형제애를 실천하는 것만 빼고 자신들이 설교한 모든 것을 실행에 옮겼다. 

 

- 상업 활동의 퇴보와 완고한 지배 계급에 대한 반발로 스페인은 유럽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서 중간계급 혁명을 경험한다. 

 

- 스페인은 19세기에 들어서도 계속해서 자유주의와 전통주의가 갈등을 빚었다.  ... 스페인 국왕들은 전통적으로 바스크 지역의 주에서는 단지 영주에 지나지 않았다. 

 

- 결코 양립할 수 없었던 '영원한 스페인'과 새로이 떠오른 정치 운동은 충돌로 발전했고, 그것이 후에 국가를 갈가리 찢어놓는다.

 

- 20세기 초 스페인은 너무나 가난해서 ... 전체 인구 1850만 중 50만명 이상이 신세계로 이민을 떠나야 했다. 기대수명은 약 35세 ... 문맹률은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있었지만 평균 64%에 이르렀다. 

 

- 스페인은 제1차세계대전 동안 중립을 지켰다. 이 기간동안에 농산물과 원료 수출, 산업 생산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고 경제 기적과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경제 기적은 안개 걷히듯 사라졌다. 

 

제2장 국왕의 퇴진

 

- 아나키즘적, 혹은 절대자유주의적 사회주의가 먼저 들어왔는데 ... 초기에 아나키즘이 스페인 노동계급 내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아나키즘은 자유롭게 연합하는 공동체들의 협력 구조를 주장했는데, 이것이 스페인 노동자들의 뿌리 깊은 상호부조 전통과 맞아떨어졌다. 또한 아나키즘이 내세우는 연방주의적 조직은 중앙집권적 경향에 적대적이었던 노동자들에게 호소력이 컸다.

 

- 19세기의 마지막 4반세기 동안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자들은 더디게 성장했다. ...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아나키스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그들이 중앙집권적 국가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 농촌 특성이 강했던 스페인 사회에서 사회주의자들의 세력 확장이 더뎠던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은 마르크스가 농민들은 물론, 그 자신이 '농민적 삶의 어리석음'이라고 한 것에 경멸적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 산업 노동자들의 폭동과 당국의 가혹한 진압으로 빚어진 폭력의 악순환은 때로 극심한 혼란을 유발했다. 

 

- 스페인에서 군대가 차지하고 이던 확고한 지위는 점진적 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 지휘관이 너무 많은 이 무능한 조직은 국가에 무거운 짐이었다. ... 승진에 목마른 스페인 장교들에게 모로코 복무는 본토의 지루한 병영 생활과는 거리가 먼 진짜 군대 생활을 약속해 주었다. ... 그들은 스페인 군대의 엘리트로 떠올랐고 그들의 머릿속에 거만함과 모종의 사명감을 심어주었다. 

 

-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수출 붐이 수그러들자 노동자들은 점점 호전적으로 변해갔다. ... 1918년부터 1920년 사이에 안달루시아에서는 폭동이, 바르셀로나에서는 대규모 노동쟁의가 일어났기 때문에 이 시기는 '볼셰비즘의 3년'으로 알려졌다.   ... 전국노동연합이 과격해지면서 사회주의자들이 이끌던 노동자총동맹의 온건 노선과 자주 충돌했다. 

 

- 마드리드의 정치가들조차 모종의 토지 개혁 프로그램이 시급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문제와 진지하게 씨름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한 정부가 거의 없었다.

 

- 1921년 7월 스페인 군대가 모로코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나자 훨씬 심각한 위기가 나타났다. .. 아누알 원정군은 무능한 군대의 고전적인 사례였다. ... 카탈루냐의 신임 총사령관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가 프로눈시아미엔토를 단행했는데, 그는 알폰소 13세를 계속 국가 수반으로 둔 상태에서 스스로 독재관에 취임했다.

 

- ... 

'잡식성 책 읽기 > Humanit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낭만주의의 뿌리 (이사야 벌린)  (0) 2022.03.08
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  (0) 2022.02.19
교감 해설 징비록  (0) 2021.11.21
공부하는 삶  (0) 2021.09.28
교감완역 난중일기  (0) 2021.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