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장

20221111

choijeo86 2022. 11. 11. 19:40

1. 용역 과제

 

진행중인, 또는 내년 초에 함께 하기로 한 수탁 용역 과제가 7개 정도 된다. 하나는 내가 PM(연구 책임자)이고 나머지는 참여자로 돕고 있다. 넓게는 국제무역/국제개발의 주제 아래에서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 IPEF, OECD, 무상원조(ODA) 등등 키워드도 다양하고, 그에 따라 발주처도 다양하다. 입사한지 고작 1년 지났기 때문에 아는 것보다 모르는게 훨씬 많지만, 그래도 몇 가지 느낀 점들을 적는다.

 

- 일이 잘 되든 못되든 모든 책임은 PM이 지는 거라서, 내가 PM이 아니면 적어도 심리적인 부담은 좀 작아지는 것 같다.

- 과제에 참여하는데 과제의 주제도 중요하지만 PM이 어떤 사람인지, 일하는 스타일이 나와 잘 맞는지, 일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하는지 등도 매우 중요하다. 사실 주제 못지 않게 사람 보고 일하는 면이 크다. 

- 과제를 할 때 실제로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 몇 만 있어도 왠만한 일은 다 할 수 있다. 같이 일하기에 마음 맞는 몇몇만 딱 꾸려 일하는 것이 가장 효율성이 높은 것 같다.

- 연구자들에 따라서 용역과제를 별 학술적 가치도 없고 귀찮은 일로 치부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실제로 비생산적이고 쓸데없는 일들도 적잖고, 그로 인해 힘들어하는 분들도 있으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좋은 용역 과제를 할 경우,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한 기회들도 많은 것 같다. 

- 그래도 이 일 저 일 마다 않고 받다 보면 결국 내 시간이 줄어들기에, 내년에는 가려 가면서 거절도 하고, 적게 받겠다!라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주위 분들 보니 그렇게 다짐해도 결국 일이 줄어들지는 않는 것 같다ㅠ

(누가 그랬다. 한 번 바빠지면 다시 한가해지는 일 같은건 없고, 그러니까 입사 초에 한가할 때 그걸 즐기라고. 맞는 말이다.)

 

2.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EWS)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와 산업에서 '핵심 원자재 및 중간재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공급망 안정에 대한 이야기는 한해 내내 언론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 전문가들이 자주 말하는 여러 대안들이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EWS) 구축, 공급망 취약점(choke point) 파악 등이다. 

 

용역 과제의 일부로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상품무역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축하는 종류의)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어떤 모형들이 가능한지, 그 모형들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것인지 약간 알게 되었다. 

 

화재 경보 시스템에 비유하면, 큰 불이 날 만한 불이 보이면 너무 늦지 않게 미리 불이 날 것 같다고 경보를 울려야 한다. 그런데 아주 작은, 그냥 놔두면 꺼질 한 줄기 연기에 '불이야!!'하고 호들갑을 떨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불이 활활 타는데 가만히 있는 것도 큰일이다. 결국 이러한 오류들을 최소화하면서, 큰 불이 날 위험이 있는 '적절한 규모의 불에 대해' '적당한 수준에서' '너무 늦지 않게' 경보를 띄울 수 있는지가 관건인 것 같다.  

 

조기경보모형의 초기 버전을 만들었지만 앞으로 계속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어떤 모형도 절대로 완벽할 수 없다. 다만 작은 불이 날 때 그것이 큰 불로 번질지, 그래서 어떤 조치가 필요할지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데는 여러 도구들이 필요하고, 그 중에 한 가지 참고할 수 있는 도구로 이러한 데이터에 기반한 조기경보모형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3. 채용

 

연구인턴 채용 면접에 두어시간 들어와 달라고 해서 갔는데, 별 새삼스럴 것도 없는 이야기지만, 요새 살기 팍팍하다는것을 다시 느꼈다. 

박사들 사이에 있다보면 아직 30대 후반인 나는 '풋내기 주니어' 소리를 듣지만, 나보다 10살 이상 어린 분들을 보니 문득 내 나이가 체감되면서 동시에 그 분들이 안쓰러웠다.

 

4. 연구 과제

 

블로그에 글을 쓰며 베트남 선하증권(B/L) 데이터 이야기를 빼놓은 적이 없다. 그만큼 이 데이터를 알게 되고서는 '이걸로 최대한 이것저것 뽑아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연구를 하면서 (여러 뻘짓들을 좀 한 이후에) 베트남에 진출한 일본계 기업들의 목록을 만들었고 그것을 B/L 데이터에 붙여서 베트남 진출 일본계 기업의 무역 패턴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박사 졸업하고 참 오랜만에 Atom으로 Python3 코딩 짰다.)

한국계 기업에 대해서는 이미 진행된 선행연구가 있으니 둘을 비교하는 것이 다음 스텝이다.  

 

내년에는 요새 다들 관심이 많은 공급망 이슈와 묶어서, 국내 및 해외(i.e. 베트남)의 한국 기업들의 수입 집중도를 파악하겠다는 주제로 과제를 하나 밀어야겠다. 정책적인 면에서는 공급망의 중간재 조달 다변화와 연결할 수 있는 '수입 집중도'에 관심들이 많겠지만, 아마 학계에서는 '내연적/외연적 마진'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학술적 기여도가 높다고 볼 것 같다.

 

5. 디펜스

 

네이버 웹툰에 '대학원 탈출일지'를 재밌게 보고 있는데, 최근에 올라온 디펜스와 관련된 편(Link)을 보며 내 박사과정 시절을 생각했다. 

미국 경제학 박사과정의 경우 졸업 예정 한 해 전에 매우 혹독한 잡마켓 프로세스를 거치게 되고, 구직에 성공하면 디펜스를 하게 되는데 잡마켓이 워낙 힘들기 때문에 디펜스는 상대적으로 널럴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것도 캐바캐)

나는 디펜스를 잡마켓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새벽 2시인가에 했는데, 훈훈한 분위기에서 1시간 반 가량 진행하고 끝난 기억이 난다. (당연하게도, 그 뒤로 교수님들 얼굴 본 일은 없다ㅋ)

지금 생각해보면 파란만장했던 박사과정의 종지부를 찍는 자리였는데 온라인이라 그랬는지 그 때 내 상태가 안좋아서 그랬는지 끝나고도 큰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졸업식도 없었고 있었더라도 갈 형편도 아니었는데, 후딩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약간 드는걸로 봐서는 이제서야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겼나보다. 

 

6. 취미

 

가끔 예전에 알던 이들을 오랜만에 만나면 너는 박사학위도 받았고 직장도 잡았는데 그 전과 별로 달라진게 없다고, 더 재밌게 살아보라는 얘기들을 듣는다. 사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골프 안치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주위에 또래 박사들 중에 골프 치는 이들이 몇 있다. 하지만 나는 골프 치고 싶다는 생각은 그닥 들지 않는다.  대신 (부수입이 좀 생기면) 자전거를 한 대 사려고 벼르고 있다. 

 

7. 다시, 논문을 읽자

 

- 리서치비틀에 연말까지 하나 글을 올리려는데, 어떻게 논문을 고를가 하다가 VoxEU에 올라오는 논문 갈무리 칼럼들(Link) 중 국제무역 논문을 하나 고르기로 했다. 그 중 제목에서 딱 끌린 논문이 하나 있었다. "Free-Riding Yankees: Canada and the Panama Canal" (Link) 20세기 초 파나마 운하의 개통이 무역비용의 감소를 통해 북미에 어떤 경제적 효과를 가지고 왔는지에 대한 연구이다.

 

- (누가 나보다 먼저할까봐) 선하증권(B/L)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들도 뭐가 새로 나오는지 꾸준히 찾아 보는데 아주 최근 NBER 워킹 페이퍼 중에 공급망 교란의 거시경제적 효과를 다룬 논문이 나왔다. "Macroeconomic and Asset Pricing Effects of Supply Chain Disasters" (Link) 다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필요한 부분만이라도 읽어야겠다. 

 

8. 마무리

 

적고 보니 죄다 일 아니면 연구 얘기들 뿐이다. 연구실에 새로 산 책들은 쌓여만 가는데, 정말 내년에는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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